Overview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코오롱의 문화예술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라는 제목으로 무나씨(b.1980)의 개인전을 연다. 그는 한국화를 기반으로 마음과 관계,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내면의 파동을 오래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회화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하나의 여정이자, 자신을 들여다보는 조용한 수행의 장이 된다.
무나씨는 종이 위에 남는 한 획을 마음의 표면, 곧 수면(水面)에 번지는 파문에 빗댄다. 아주 미세한 떨림이 물결이 되어 퍼져나가듯, 말로는 붙잡을 수 없는 내면의 움직임이 화면 속에서 천천히 형태를 드러낸다.
이번 전시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는 감정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태어나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바라본다. 감정은 타인과의 마주침에서 깨어나 흔들린다. 관계와 감정은 수면 위의 물결처럼 서로에게 스며들며 빛을 교환한다. 작가는 그 미묘한 균형의 순간을 붙잡는다. 서로 마주하거나, 한 곳을 향해 시선을 나누거나, 맑은 물 위에 반사된 얼굴 앞에서 잠시 숨 고르는 순간까지.
무나씨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두는 방식을 택한다. 그 수용의 태도는 결국 타인을 통해 나를 다시 비추는 일이며, 흔들림 속에서 나의 모습을 고요히 바라보는 일로 이어진다.
이름에 담긴 ‘무(無)’와 ‘나(我)’처럼, 그의 작업은 채움과 비움, 타인과 자아의 경계를 오가며 그 사이의 여백을 들여다본다. 전통 필묵의 호흡과 현대적 감수성이 만나는 화면에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모습을 바꾸어 머물고, 때가 되면 다시 떠오를 뿐이다.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는 감정과 관계가 교차하는 수면 위에서 우리 각자의 얼굴을 비추는 전시다. 관객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계의 떨림을 지나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고요한 순간과 만나게 된다.
보도자료
The Season We Fade Away
Space K Seoul is pleased to present The Season We Fade Away, a solo exhibition by Moonassi (b. 1980). Rooted in the traditions of Korean painting, the artist has long explored the mind, human relationships, and the subtle inner currents that flow between them. In this exhibition, his paintings serve as both a journey following the flow of emotions and a site for quiet contemplation of the self.
For Moonassi, each stroke that remains on paper resembles a ripple spreading across the surface of the mind—like a tremor that gently disturbs still water. Just as the faintest vibration expands into waves, the movements of the inner self—elusive and resistant to words—slowly take shape on the picture plane.
The Season We Fade Away reflects on how emotions are born from and fade within relationships. Emotions are awakened and stirred by encounters with others. Like waves on the water, relationships and emotions seep into one another, exchanging light. The artist captures these moments of delicate balance: from figures facing one another, to sharing a gaze toward a single point, to pausing for a breath before a face reflected on the water’s surface.
Moonassi does not suppress or define emotions. Instead, he chooses to let them be. This attitude of acceptance becomes a way of seeing the self reflected through others, leading to a quiet observation of one's own being amidst these fluctuations.
As suggested by the characters in his name—"Mu (無: non-)" and "Na (我: self)"— his work traverses the boundaries between fullness and emptiness, the self and the other, peering into the space that lies between. In his compositions where the traditional ink meets modern sensibility, emotions do not simply disappear. Rather, they linger, changing form, only to resurface when the time is right.
The Season We Fade Away is an exhibition that reflects our own faces on the surface of the water where emotion and relationship intersect. Viewers are invited to accept emotions as they are and, in passing through the tremors of relationships, encounter a quiet moment of return to the self.
Press kit
Photograph © Junho Lee, SpaceK Seoul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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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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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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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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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나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