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뼛

어떤 외국인 친구가 장문의 이메일을 써서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 라는 그림의 숨은 의미에 대해 질문해왔다. '아, 그 그림은 어떤 글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었어요. 제가 썼던 글...' 하며 그 글이 무슨 내용이었던가 궁금해 하며 책장 가장 높은 곳 먼지가 수북이 쌓인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 느낌으로 이동식디스크를 뒤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다행히, 오래전 운영했던 블로그, '악크로스더유니버스닷컴' 폴더에 유물처럼 차곡차곡 모든 글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 글을 찾아 읽다보니 그 당시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마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그렸던 것 같아-' 하고 대강 설명해주고나서, 다시 오래전 글을 읽다보니 뭐라도 쓰고싶어졌다.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망할 것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어림잡아 2011년 즈음부터 글을 쓰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림으로 말해요'를 터득하고 난 이후 글쓰기에 흥미를 잃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글'에는 뭔가 어마무시한 감정들을 쏟아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림이든 글이든 보나마나, 읽으나마나 한 내용이라면 안쓰는게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시 들춰보니 적어도 내게는 나름 의미 있는 기록이었던 것 같다. 하여 이 글은, 다시 뭔가를 써보기 전의 쭈뼛거림 정도가 되겠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자(마시라).